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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남문창의비

  • 소재지 :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사남북길 32 (장성남문창의비)
  • 지정번호 : 도 유형문화재 120호 (1985. 2. 25)
  • 규 모 : 정면 1칸, 측면 1칸, 팔작지붕
  • 분 류 : 유형문화재

남문창의비는 임진왜란 때에 장성 남문(현 북일면 오산)에서 의병을 일으켜 왜적과 싸우다 순절한 장성현감 이귀, 전좌랑 김경수, 기효간 등 의병의 공적을 추모하기 위해 순조2년(1802)에 호남의 유림들이 북이면 사거리에 건립한 것이다.

1차 남문창의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8월 24일, 김경수 선생을 맹주로 하여 일어났다. 장성현 남문에 의병청을 세우고 격문을 보내니 인근 고을에서 수많은 의병이 모여 들어, 그해 11월 김제민을 의병장으로 삼고 1,651명의 의병이 496석의 군량미를 가지고 북상하여 직산과 용인 등지에서 왜적을 격파시켰다.

그 후 고향에 돌아온 의병들은 일본과 조정의 협상을 관망하였다. 그러나 화의가 결렬되자 김경수 선생은 1593년 5월 29일, 다시 장성 남문에 의병청을 열어 의병과 곡식을 모집하였으며, 장성 현감 이귀는 관군 가운데 강한 군사 40명을 선발하고 읍병(邑兵) 300명을 조련하는 등 의병을 지원하였다. 이것이 바로 2차 남문창의인데, 김경수 선생의 두 아들 극후(克厚)와 극순(克純)이 의병 836명을 이끌고 동년 6월 진주성 혈전에 참전하여 진주성 함락과 함께 모두 순절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백양사 의승 70명과 1천여 명의 의병이 3차 남문창의를 일으켰다. 이들은 안성에서 큰 전과를 올렸으나 아군의 피해도 커서 화군하였다. 남문창의에 참여한 의병장 72위를 오산창의사에 모시고 매년 향화를 올리고 있다.

남문창의비각은 정면 1칸 측면1칸이다. 이 비에 새겨진 77인 가운데는 승려 9명과 노복 1명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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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관광과 문화예술담당 이미영 ☎ 061-390-7226